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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장기표의 문화산책] 사랑을 통해 해탈한 헷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17년 08월 24일 16시 50분
↑↑ 본지 고문이시며 신문명정책연구원 이사장 겸 부패청산국민행동 상임대표이신 장기표 선생
ⓒ 옴부즈맨뉴스

엊그제 헷세의 싯다르타처럼 살아온 어떤 분에게 ‘싯다르타’를 한 권 사서 선물했다. 무척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 책을 사자마자 다시 한 번 일별했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동양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불교를 전공한 사람도 아닌데도 어떻게 이렇게나 불교의 교리를 정확히 이해했을까 싶어서 말이다.

헷세는 불교를 어떤 것으로 이해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불교의 연기설이다. 인과생멸(因果生滅) 곧 원인과 결과로서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범죄와 자비, 죽음과 영생 등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물체 안에 다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고 통일되어 있으며, 이 통일되어 있음을 진실로 깨달으면 해탈하여 열반 곧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통일되어 있음을 깨달아 해탈하게 되면 ‘지금 여기’가 열반이요 극락이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열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통일되어 있음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헷세는 사랑이라고 보았고, 이것은 정확한 인식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통일되어 있음을 알려면 세상의 모든 물체와 내가 동류(同類)임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알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면 세상과 내가 동류로 통일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세상의 이치 곧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통일되어 있음을 깨달아 해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중요한데, 수행이란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헷세는 불교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이를 체화해서 해탈하는 데 있어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밝혀두고 있는데, 이런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부처님이나 다른 위대한 스승 또는 그들의 가르침이 누구를 깨닫게 해서 해탈케 해주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스스로 자연의 이법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서 해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에서 살불살조(殺彿殺祖) 곧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해탈은 부처님에 대한 추종이나 부처님이 설한 경전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이법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내가 설한 법문 가운데서 진리를 찾으려 하면 평생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의미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도 법(法) 곧 다르마(Dharma)라고 하지만 자연 내지 자연의 이법도 법 곧 다르마라고 한다. 왜 이런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연의 이법이 다르지 않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자연의 이법을 발견해서 그것을 설명했을 뿐이다. 그러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곧 자연의 이법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부처님의 가르침 곧 불법을 설하기 전에도 자연의 이법 곧 부처님이 가르친 법은 있었던 것이다.

헷세가 불교의 교리를 정확히 이해한 것은 그의 인도여행이나 그의 외할아버지 등을 통해 불교 교리를 학습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헷세 자신의 삶을 통해 자연의 이법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연의 이법은 불교와 상관없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불교가 추구하는 해탈은 부처님의 가르침 곧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통해서도 얻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교가 추구하는 해탈은 불교를 통하지 않고도 얻어지는 것이다.

좀 더 부언하자면 부처님의 가르침 곧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연의 이법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통해서만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진정한 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연의 이법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얻는 효과적인 방안일 뿐이다. 즉 불교는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을 한 곳에 모음으로써 세상의 모든 물체는 서로 얽혀 통일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며. 바로 그 사랑을 통해서 해탈을 얻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불교가 추구하는 해탈을 얻은 부처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부처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서 해탈의 방법 곧 불교 교리를 설파하기 전에도 자연의 이법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서 부처가 된 사람과 사물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미륵불, 비로자나불, 보광불, 보명불 등 무수히 많은 부처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를 불교의 교주인 부처님으로 모시는 것은 중생제도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고타마 부처님을 따르지 않고서 강가에서 노를 저으며 강물 소리 등을 들으며 자연의 이법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해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해탈했다고 해서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이 진정으로 가르친 해탈의 방안을 따른 것이다. 앞에서 이미 강조했듯이 아무리 좋은 스승과 가르침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자연의 이법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서 해탈하는 것이지 스승이나 가르침이 누구로 하여금 자연의 이법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서 해탈케 해주는 것은 아님을 헷세의 ‘싯다르타’는 말해주고 있다.

싯다르타가 고타마 부처님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부처님을 따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 ‘싯다르타’에서 고빈다가 부처님을 따라서가 아니라 친구인 싯다르타의 애정 어린 설법을 듣고서 감동해서 마침내 자신의 깨달음으로 해탈을 얻은 것도 이것을 말해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빈다가 고타마 부처님을 따라 수행한 것은 무의미했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것이 축적되었기 때문에 깨달음과 해탈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처님을 따라가지 않은 싯다르타는 깨달음과 해탈을 얻었는데도 고타마 부처님을 따라간 그의 친구 고빈다는 깨달음과 해탈을 얻지 못하고 이 소설이 끝날까 걱정했었는데, 비록 그의 친구 싯다르타의 도움을 받기는 했어도 마침내 깨달음과 해탈을 얻어 고타마 부처님이 누린 온전한 평화를 얻어 고요히 미소 지을 수 있은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웠다. 역시 헷세다 싶었다.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나는 이 글에서 헷세가 불교의 교리를 정확히 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나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헷세가 불교의 교리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못했는지를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해하는 불교의 교리에 비추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굉장히 유효하다고 보는 바, 소설의 형식을 빌려 등장인물들이 살아있는 말로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래 전 어느 원로스님을 뵀을 때 자신은 젊을 때 헷세의 ‘싯다르타’를 읽고서 불교 교리를 다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씀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는데, 충분히 그런 말씀을 하실 만했다.

불교 교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 아니 불교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분은 읽어 보았으면 한다.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17년 08월 24일 16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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