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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작가 마광수, 필화구속, 해직, 혁명가처럼 살다 비운으로 간 로맨티스트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17년 09월 05일 18시 53분
↑↑ 자살한 마광수 교수
ⓒ 옴부즈맨뉴스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수필집으로 한국사회에 파문을 던진 소설가 마광수씨가 자택에서 자살했다. 당시 연세대 국문과 교수였다. “솔직하게 본능을 드러낸 야한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강의 중 학생들에게 “너희 섹스 해봤어? 사랑하니까 섹스 하는 거야. 섹스 해봐야 사랑을 알아” 등의 말을 거침없이 했다. 그의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마광수의 성(性)담론은 수필을 넘어 문학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대표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에 이어 1991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출판되자마자 8만부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언론과 문학계에서 음란소설로 규정하면서 결국 그는 검찰에 의해 ‘음란문서유포죄’로 전격 구속됐다.

전례를 찾기 힘든 필화사건으로 그는 연세대에서 면직조치까지 당했다. 구속과 면직 등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문학은 상상력의 모험이며,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다. 문학은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창조적 불복종이요, 창조적 반항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외롭다”라는 말을 남겼다.

야한 작가는 문학계의 외로운 ‘왕따’가 됐다. 일각에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로맨티스트’라고 그를 표현했고, ‘예술과 외설의 경계인’이란 말도 나왔다.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난 마광수는 종군기자였던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나왔고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 25세에 대학 강의를 시작해 28세에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낸 후 1984년부터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92년 10월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전격 구속돼 두 달간 수감생활을 한 뒤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연세대에서 면직됐다가 98년 복직했다. 이후에도 2000년 재임용 탈락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억척스럽게 그를 키워 교수로 만든 90세 노모를 줄곧 모시고 살았다.

1977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그는 시, 소설, 에세이, 평론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40여권의 저서를 쏟아냈다. 주요 저술 서적은 다음과 같다.

▲ 문학이론서= ‘윤동주 연구’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마광수 문학론집’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문학과 성’ ‘삐딱하게 보기’ ‘연극과 놀이정신’

▲ 시집= ‘광마집(狂馬集)’ ‘귀골(貴骨)’ ‘가자 장미여관으로’ ‘야하디 얄라숑’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일평생 연애주의’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 ‘천국보다 지옥’

▲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사랑받지 못하여’ ‘열려라 참깨’ ‘자유에의 용기’ ‘마광쉬즘’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더럽게 사랑하자’ ‘마광수의 뇌구조’ ‘나의 이력서’ ‘스물 즈음’

▲ 소설= ‘권태’ ‘광마일기’ ‘즐거운 사라’ ‘자궁 속으로’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광마잡담’ ‘로라’ ‘귀족’ ‘발랄한 라라’ ‘사랑의 학교’ ‘돌아온 사라’ ‘미친 말의 수기’ ‘세월과 강물’ ‘2013 즐거운 사라’ ‘아라베스크’ ‘인생은 즐거워’ ‘나는 너야’ ‘사랑이라는 환상’

▲ 문화비평집=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사라를 위한 변명’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육체의 민주화 선언’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생각’

▲ 전시회= ‘마광수·이목일·이외수·이두식 4인의 에로틱 아트전’ ‘색(色)을 밝히다 전’ ‘꿈꾸는 삼총사전: 마광수·한대수·변우식’ 등

그의 긴 약력은 마광수의 글이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가를 보여준다. ‘구속’ ‘수감’ ‘항소심’ ‘해직’ ‘복직’ 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이력은 민주화 운동가의 그것처럼 극적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무슨 운동가’로 규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하고 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은 처벌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운동가라기보다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이런 파장을 몰고다닌 것은 그의 생각이 갖고 있는 ‘솔직함’ 때문이었다. 과감한 발언은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됐고, 또 지탄의 시선을 불러 모았다.

그는 소설을 쓸 때 문장에 가장 신경을 쓴다고 토로했다. 가장 친근감 있고 가벼운 문장이 되도록 애썼다. 또 “작가는 ‘상상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17년 09월 05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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