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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김우일 칼럼] 최고의 언론권력 ‘조중동’을 해부하다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19년 10월 06일
↑↑ 본지 논설위원 겸 대우M&A 대표 김우일 박사
ⓒ 옴부즈맨뉴스

현대민주주의 시대에 권력보다 더 센 게 언론의 힘이라는 것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권력의 힘은 유한하고 유형적인 반면 여론은 무한하고 무형적이라 아무리 권력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려 해도 언감생심이다. 이러한 여론을 움직이는 힘은 또 언론이라는 매개체가 불쏘시게 역할을 하며 리드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은 자체 발생력이 있다기보다 언론이라는 매개체가 불을 지펴 타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언론의 힘은 대중사회에서 왕관 없는 무소불위의 황제나 다름없다.

특히 흔한 말로 힘빨있는 언론은 권력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새로운 권력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힘있는 언론은 이른바 ‘조중동’이라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다.

우리나라 언론 영역에서 이 조중동이 차지하는 힘의 장악력은 거의 70%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언론의 독점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여러 정치, 안보, 경제, 외교 문제에 있어 항상 집권여당과 불협화와 논쟁을 일으키는 이 거대 조중동을 두고 SNS상에서는 토착왜구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필자는 이 친일성향의 토착왜구라는 비난이 어디서 파생이 되었는지 조중동의 뿌리를 파헤쳐볼 필요성을 느꼈다.

조선일보는 1920년 친일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의 예종석을 발행인으로 창간되었으나 경영난이 계속되자 방응모가 인수하였다.

방응모는 젊은 시절 폐광을 빌려 채굴하다 엄청난 금맥을 발견, 조선굴지의 금광왕이 되었다. 광산을 일본인에게 팔고 그 대금으로 인수한 조선일보에 공격경영을 펼쳤다.

사세가 확장되어 수익이 늘어나자 방응모는 총독부에 고사포와 기관총을 뇌물로 주고, 또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봉찬회에 발기인을 시작으로 각종 친일단체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총독부소유의 땅을 임대해 큰 수익을 거뒀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즉각 협력과 후원에 나섰다. 조선일보 지면은 노골적인 일본천황에 대한 충성과, 조선지원병제도를 축하하고 앞장서는 친일기사로 채워졌고 이 덕분에 방응모는 총독부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일본의 대륙전쟁에 대비한 물자절약정책으로 일본으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조선일보는 폐간되었지만 해방 후 방응모는 동 신문을 재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사주는 그 후손들이 계속 장악해왔다.

중앙일보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이병철에 의하여 1965년 설립되었다. 이병철은 1930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했으나 수학중 병으로 중도귀국, 아버지로부터 사업자금을 받아 식산은행과 거래 땅투기로 돈을 벌어 200만평의 대지주가 되고 결국 삼성상회를 설립, 오늘날의 삼성그룹을 일궈냈다.

일제시대 뚜렷한 친일행적이 나오지는 않지만 일제시대 대부분의 부호가 친일을 기화로 돈을 벌었다는 점에서 그의 친일성향은 중요한 마인드였을 것이다. 이후 여러 방송으로도 진출하고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사주는 이병철의 사돈계가 장악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920년 김성수의 민족자본으로 출발하였다. 김성수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중앙학교, 경성방직을 세우고 보성전문학교도 설립하여 근대적 부호로 민족개량주의를 주창했지만 일본군국주의가 탄압하며 친일행위로 돌아섰다.

일본군국주의의 전쟁특수에 수혜자가 되었고 일제의 강요지만 친일단체에 가입, 학병권유연설을 했으며 그 동생은 비행기 2대를 일제에 헌납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일삼았다.

일제시대에서는 친일이 아니면 부호가 될 수 없었다는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 이 세 사람의 조중동 창업자는 뿌리 깊숙한 곳에서 친일성향을 배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뿌리의 조중동이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토착왜구라고 비난받는 까닭이 뭘까? 정부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의 고유기능에 충실한 건지, 아니면 정부권력을 좌지우지해 언론권력의 아성을 쌓으려는지 그 진심이 의아하다.

언론은 보수, 진보, 친일, 반일, 친미, 반미, 친북, 종북 등 경계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오로지 그 경계선의 담 위에서 양안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더 좋은 화합의 길을 제시하는 언론에서 조중동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19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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