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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원웅 광복회장 기념사 무엇이 문제인가?

광복회장, 상당 부분 할 수 있는 소리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20년 08월 24일 21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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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75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두고 보수와 친일파 후손들이 민낯을 보였다.

김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비판의 수위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조직체의 수장으로서 는 친일척결에 대한 의지가 당연히 남다를 수밖에 없고, 더구나 김 회장 부모가 모두 의열단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해방 1년 전 충칭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부모님과 함께 귀국했다. 3선의 국회의원을 지내며 외교통상분과위원장을 지냈기에 외교에 정통하다.

김 회장은 해방 후 국가 진영을 보수와 진보가 아닌 민족과 반민족을 견지(見地)해 왔다. 따라서 김 회장은 누구보다도 친일척결의 의지를 갖고 있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은 민족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통탄(痛歎)했다.

통합당과 보수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를 보면 크게 5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하여 김회장의 기념사가 크게 그르지 않음을 피력하고자 한다.

첫째, 친일 미척결의 나라

민족정기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을 꼽는다면 친일척결일 것이다. 이는 반드시 정리하고 나아가야할 우리 시대의 당면 과제다.

김 회장은 기념사에서 "우리 민족의 미래에, 발목을 잡는 것은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여 존재하는 세력'이다"라며 "친일 미청산은 한국사회의 기저질환이다"라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또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는 보수와 진보가 아니고 민족과 반민족이다. 친일청산은 여당.야당의 정파적 문제도 아니고, 보수·진보의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친일청산은 국민의 명령이다" 라고
친일척결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친일파의 기준과 범위가 난이하고, 국민적 함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지만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우선 확실한 반역행위자를 선별하여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각 분야에서 출세하기 위해 식민국(植民國)에 협력하고, 아부하며 충성한 일까지를 친일로 보아서는 국민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친일의 기준과 범위를 “일본으로부터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자가 이를 악용하여 우리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국가의 유산을 크게 손실케 한자 또는 그 협력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持論)을 갖고 있다.

그 동안 친일파 후손들이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따라서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온 이들의 외침을 탓할 일은 아니다. 광복회는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으로 구성되어 있어 김 회장이 친일척결을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둘째, 화폐속의 독립운동가 부재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전 국민적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드물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신사임당, 유관순 열사(烈士) 등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인도의 간디나 베트남의 호치민 등 그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영웅들을 전 국민이 열렬히 경배(敬拜)하는 것을 목도(目睹)한 일이 있다. 그리고 그 나라 화폐의 인물로 경외(敬畏)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돈 속에는 독립운동가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김구도 이승만도 유관순도 모두가 독립운동가로서의 화폐속의 인물로 추앙(推仰)되어야 한다.

유독 "전 세계에서 화폐 속의 인물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 한 나라뿐이다"라고 개탄(慨歎)한 김 회장의 꾸짖음은 일리(一理)가 있다.

셋째, 안익태의 애국가가 친일인가?

애국가는 1936년 베를린에서 안익태가 작곡하여 이미 미국·일본·중국 등지에 있는 교포들에게 익숙해 진 노래다.

이를 1948년 남한정부수립을 기하여 이승만 정부에서 정식 국가(國歌)로 채택했다. 그리고 72년간 국가를 대표하여 불리어지고 있다.

이 마당에 과연 안익태가 친일파냐 아니냐는 지금도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다.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시절에는 3·1운동이 일어나자 친일교사 추방 데모를 벌려 주동자로 몰려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1938년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에텐라쿠>(뒤에 '에텐라쿠'라고 알려짐)를 발표했는데, 이 곡은 일본 왕의 즉위식 때 축하곡으로 연주되던 곡의 선율을 차용한 것으로 논란이 되었다.

이 무렵 독일 나치 제국에 협력했던 스승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일본축전곡>을 연주했고, 1942년 만주국의 건국 10주년을 축하하는 <만주환상곡>과 <만주축전곡>을 작곡해 이를 직접 지휘하여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를 알리는 음악 활동에 두루 참여했다.

1955년 귀국하여 근 10년간 고국에서 활동하고 1965년 스페인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2009년 발행된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위와 같은 안익태의 경력을 두고 친일파로 불러야하며 애국가를 바꿔야 하는지는 국민적 함의 도달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하여는 김 회장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넷째, 친일파 현충원 파묘(破墓)와 서훈 취소

김 회장은 “서울현충원에 69명의 친일반민족 인사가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금년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립묘지법을 개정하여 이들을 파묘하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명백한 친일 반민족 인사가 묻혀있다면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분이라면 실행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준과 범위’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해방전에는 ‘친일’이라는 ‘과’(過)가 있고, 해방이후 6.25 동란과 남한정부수립 후에는 ‘공’(功)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선별에 있어서 여느 정부도 난색을 표해 왔다.

따라서 부분적으로는 김 회장의 주장에 동의하나 원론적으로는 파묘대상의 구분이 자칫 국민적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할 것이다.

서훈 취소도 마찬가지 맥략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서훈의 공적이 무엇으로 훈장을 탓는지를 면밀히 분석하여 친일반역행위 여부를 가려내어야 한다. 따라서 국립묘지법과 상훈법의 개정은 친일정리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이승만의 친일파 결탁

김 회장은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라고 몰아 세웠다. 그럴만한 개연성은 다음과 같이 충분히 내존하고 있다.

하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및 정부요인 암살 음모 사건

"1948년 10월 하순 수도청 수사과장실에는 수사과장 최난수, 사찰과 부과장 홍택희, 최난수의 전임자였던 노덕술이 모여 반민법 제정을 주도하였던 국회의원들에게 암살 등 테러를 가하기 위하여 전문적인 테러리스트인 독립운동가 출신 백민태를 고용하기로 하고, 1948년 11월 17일 최난수와 홍택희는 백민태를 불러 암살계획을 시달했으며, 1949년 1월 8일 거사자금과 권총, 실탄 등을 받아갔으나 끝내는 검찰에 자수하여 미수에 그쳤다.

둘, 국회프락치사건

국회프락치사건은 1949년 반민특위에서 친일파를 적발하고 체포 활동하는 국회의원을 남로당과 접촉하고 공산당에 협조한 간첩혐의로 구속한 사건이다. 이것 때문에 반민특위를 해체하게되는 명분을 주게되었고. 이로써 반민특위 법의 개정으로 1949년 10월에 해체하게 되었다.

셋, 6.3 반공대회

1949년 6월 3일 국민계몽대 주관으로 국회프락치사건으로 체포된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 의원에 대한 석방동의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에 대한 성토대회가 다시 열렸고 3~4백 여명의 군중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에 몰려와 "반민특위 내 공산당을 숙청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특별조사위원회 정문까지 습격하였다.

넷, 6.6 반민특위(특경대) 습격사건

내무차관 장경근, 치안국장 이호, 시경국장 김태선의 주도로 6월 6일 오전 7시에 중부서장 윤기병의 지휘하에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특경대장 오세륜 등 특경대원 35명을 폭행하고 중부서와 기타 경찰서로 분산 감금하였다.

이승만은 6월 9일 AP 통신사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반민특위 습격은 자신이 직접 지시한 한 것이라고 밝히고, 6월 11일에는 반민특위 활동으로 민심이 소요되어 부득이하게 특경대를 해산하였다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띠라서 이승만은 친위부대인 친일파 척결을 바라지 않았음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반민특위를 경찰을 동원하여 해체시키고, 이들과 결탁했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승만은 친미도 친일파도 아니었지만 미군정의 친일파 재임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남한정부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내칠 수가 없었다. 반민특위 사건에서 친일파와 결탁하였음은 부인할 수 역사적 사실이다. 위에서 이승만 본인이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낭독한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는 우리의 해소되지 못한 친일척결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소 이견이 있고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 후손들에게 더 이상의 갈등을 남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친일청산은 국민의 함의를 도출하여 만드시 정리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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