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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90분간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다. 그 안에는 기술의 정교함, 전술의 치밀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지탱하는 '투혼'이라는 영혼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2026년 월드컵 무대에서 우리가 목도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그 영혼을 상실한, 껍데기뿐인 팀이었다. 이번 대회는 한국 축구사의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넘어, 시스템 전체가 기능 불능에 빠졌음을 알리는 처절한 조종(弔鐘)이었다.
무엇보다 전술의 실종은 참담했다. 현대 축구가 고도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압박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은 마치 20세기 축구의 잔영을 더듬는 듯한 무기력함으로 일관했다.
감독의 실험은 철학적 깊이를 갖춘 혁신이 아닌, 중심을 잃은 갈지자 행보에 불과했다. 공은 유기적으로 흐르지 못했고,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립되었다.
공격 작업에서는 세밀한 약속된 플레이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수비 전환 시의 안일함은 상대에게 너무나 쉽게 공간을 허용했다. 전술판 위에 그려진 것은 그림이 아니라, 목적을 잃은 선들의 난잡한 집합일 뿐이었다.
더욱 통탄스러운 것은 투지의 증발이다. 대한민국 축구를 상징했던 ‘한 발 더 뛰는 헌신’은 어디로 갔는가.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에도 그라운드 위에는 분노도, 갈망도 없었다. 공을 뺏기면 되찾아오겠다는 집요한 투쟁심은 실종되었고,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체념 섞인 산책 수비와 무의미한 횡패스뿐이었다.
수만 명의 팬이 뿜어내는 응원과 함성이 선수들의 심장을 뛰게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이미 국가대표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가 무게를 잃어버린 순간, 그들은 전사가 아니라 그저 유니폼을 입은 고용인에 불과했다.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은 전략의 부재와 그를 뒷받침하는 오만한 행정 시스템에 있다.
이번 참사는 갑자기 터져 나온 사고가 아니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부터 노출된 밀실 행정과 원칙 없는 의사결정은 이미 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신뢰를 파괴했다.
현장의 선수들마저 납득하지 못하는 리더십,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협회의 안일함이 응집되어 이번 대회의 참혹한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월드컵 탈락은 단순한 성적 부진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지난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근성’이라는 자산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명 섞인 사과나 일시적인 미봉책이 아니다. 뿌리부터 썩어 들어간 환부를 도려내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하는 대대적인 혁신이다.
축구는 단순히 공을 차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민족이 보여줄 수 있는 응집력과 에너지를 확인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은 그 의식을 모독했다.
다시는 그라운드 위에서 이토록 영혼 없는 경기를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의 이 치욕이 뼈아픈 교훈으로 남지 않는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에 내일은 없다.
한국 축구가 겪고 있는 현재의 위기는 단순히 특정 감독이나 선수 개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닌, '시스템의 관성'과 '투명성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필자는 이제 질책을 뒤로하고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의사결정 구조의 '완전한 민주화'와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로 대변되는 한국 축구의 의사결정 체계는 매우 폐쇄적이고 수직적이다.
가. 밀실 행정 철폐해야 한다.
감독 선임과 전술적 기조 결정은 '전력강화위원회'라는 기구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맡겨야 합니다. 현재처럼 특정 인물의 입김이나 협회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아닌, 객관적인 데이터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철저한 검증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
나. 시스템 경영을 도입해야 한다.
협회의 핵심 보직에 '축구인'뿐만 아니라 경영, 데이터 분석, 스포츠 과학 분야의 외부 전문가를 배치하여,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현장과 행정 사이의 괴리를 메워야 한다.
둘째는 '성적 지상주의'에서 '철학의 정립'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한국 축구는 항상 '단기 성적'에 매몰되어 왔다. 이번 월드컵의 무색무취한 축구도 결국 '당장 이겨야 한다'는 압박 속에 전술적 완성도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가. 한국형 DNA 정의가 있어야 한다.
독일의 '철저한 규율', 스페인의 '티키타카', 일본의 '기술적 세밀함'처럼 한국 축구만이 가진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축구가 강한 압박인지, 빠른 역습인지, 기술적 점유인지에 대한 기술적 합의가 있어야만 유소년부터 국가대표까지 일관된 훈련 체계를 가져갈 수 있다.
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의 현대화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 당장 월드컵에서 뛸 선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10년 뒤를 내다보고 현대 축구의 흐름(높은 전방 압박, 스위칭 플레이 등)에 적응할 수 있는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배출하는 교육 현장으로 변해야 한다.
셋째는 '선수-감독-협회' 간의 신뢰 회복과 책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드러난 것은 내부 구성원 간의 불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 책임지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협회 수뇌부나 감독이 '관례적 사퇴'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원인을 투명하게 분석하고 그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왜 실패했는가"를 묻는 과정 자체가 다음 발전을 위한 자산이 되어야 한다.
나. 프로페셔널리즘을 강화해야 한다.
선수들 스스로도 태극마크가 주는 무게를 자각하고,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헌신과 전술적 이해도를 갖추도록 하는 선수 권익 및 교육 체계의 재정비가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축구는 '관리형 축구'의 늪에서 벗어나 '시스템형 축구'로 진화해야 한다. 행정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일관된 축구 철학이 밑바닥부터 뿌리내릴 때만이,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정체성 없이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당장 1~2년 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의 낡은 관행을 모두 깨부수지 않는다면, 4년 뒤의 월드컵 역시 오늘과 같은 비판을 반복할 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