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없는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 이래도 괜찮나요?
3대 경악의 기념사, 최소의 분량‧내용의 빈약‧그릇된 인식 한일 최대현안 '강제동원 노동' 언급 전무 '침략자'엔 면죄부 주고 '파트너'로 격상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 입력 : 2023년 03월 01일 2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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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사진 = )OM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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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옴부즈맨뉴스] 위현수 취재본부장 = 2023년 3월 1일은 3.1절 104돌이자, 윤석열 정부가 맞는 첫 3.1절이고, 한일 사이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노동 문제의 해결이 임박했다는 말이 나오는 때에 열린 3.1절 기념식이기도 히디.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내용이, 그중에서도 일본에 대한 메시지가 무척 기대를 했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술에 물 탄 듯한 대일 메시지를 내긴 했지만, 광복절과 3.1절은 의미가 매우 다르다. 광복절이 일제식민통치로부터 해방을 축하하는 경축일이라면, 3.1절은 일제의 무단 통치에 항의해 자주독립을 외친 선열의 행동과 뜻을 기리는 날이다.
따라서 광복절 경축사보다 3.1절 기념사가 일본에 대해 더욱 매서울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역대 정권도 그렇게 해왔다.
▲ 압도적으로 짧은 기념사에 내용도 빈약 저는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세 가지 점에서 경악했다.
첫째, 기념사 분량이 압도적으로 적은 것에 놀랐다. 보통 역대 대통령은 20분에서 30분가량의 3.1절 기념사를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5분 30초에 불과했다. 역대 대통령의 1/4에서 1/5 정도에 불과하다. 글자 수로 따지면, 달랑 1022자로 200자 원고지로 5장이 좀 넘는 양이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와 대략 비교를 해봐도 절반 정도다.
양이 적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로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불과 272개 단어로 돼 있다. 양보다는 질이 문제라는 애기다.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놀란 것이 내용의 빈약함이었다. 3.1절 기념사라고 하면, 우선 3.1운동에 관한 평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4년 전 3.1 만세운동은 기미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라는 대목이 3.1운동에 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는데, '3.1 독립운동'을 만세운동으로 격하한 것부터가 거슬린다. 또 가장 핵심인 '누구로부터 독립'인가는 쏙 빼놓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라고 추상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22년 3.1절 103돌 기념사를 한 번 대비해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마지막 임기 3.1절 기념사에서 시종일관 '독립운동'이라는 용어를 썼지 '만세운동'이란 말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또 기념사 곳곳에서 3.1 독립운동의 의미를 거론하면서, 일본과 관련해서는 "우리 선조들은 3.1 독립운동 선언에서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을 극복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함께하자고 일본에 제안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도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독립운동 선언의 내용을 빌려 일본의 반평화적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에는 일본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지적하거나 겨냥한 대목이 한 곳도 없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 내용에서 또 문제가 되는 대목은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라는 곳이다.
우리가 잘못해서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을 받은 것을 얘기할 뿐, 일본이 조선의 반발과 저항을 무력으로 제압하며 병탄한 침략주의에는 눈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일본의 침략 야욕이 있어도 그를 물리칠 힘이 있었다면 식민지로 전락이 되지 않았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일제에 항거해 전 국민이 들고일어난 3.1 독립운동을 기리는 날에 피해국의 대통령으로 할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이런 인식은 당시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는 것은 당연했다는 아베 신조와 같은 일본 우익의 수정주의 역사관, 그리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를 통해 근대화했다는 식민지 근대 사관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일본의 과거사 반성 촉구 전혀 없어,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도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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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주년 3.1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에게 서울시민들이 ‘평화인권훈장’을 수여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는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린 공로를 인정해 양금덕 할머니에게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서훈후보로 최종 추천했으나, 한일관계 복원을 더두르는 윤석열 정부의 방해로 무산됐다. 양금덕 할머니가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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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반성 촉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아마 대한민국이 독립한 뒤 나온 역대 한국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가운데 처음이 아닐까 싶다.
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 이 부분이 윤 대통령이 이날 기념사를 통해 던지려는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일본이 '일본군위안부'의 존재 사실조차 부인하고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끝났으며, 한국의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것엔 눈을 감은 채, 일본을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로 세탁해주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설령 협력 파트너로 할 일이 있더라도 과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할 수 있는 것 아닐는지...
윤 대통령이 한일 갈등 해결의 모델로 강조하는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에도 '과거 직시'와 '미래 지향'이 동전의 앞뒤처럼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선언의 핵심은 오부치 총리가 한국이 이룬 민주화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받아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이 평화헌법을 준수하며 비핵 3원칙과 전수방위 아래서 국제사회에 공헌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지금 일본이 과연 그런 것을 준수하고 있는지, 오히려 '안보 3 문서'를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본격적으로 체제를 개편하고 있는 게 실상이다.
일본과 최대 현안인 '강제 동원 노동' 문제의 해결이 가깝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해 기념사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본다. '한국이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일본 쪽의 요구를 이미 전적으로 수용했거나, 민감하니까 피해 가는 것이다. 저는 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마, 모두 식민지 피해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 기시다 일본 총리에 맞장구 친 대일 인식
이번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내용을 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1월 일본 정기국회 총리 시정방침 연설과 운이 맞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는 국교 정상화 이후의 우호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긴밀히 의사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 해에는 단지 '중요한 이웃'이라고 했는데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 나가야 할"이란 수식어를 붙여 띄워준 것이다.
이번에 윤 대통령은 여기에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하며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화답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거의 모든 일본 미디어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노동 문제에 언급하지 않았으며, 일본을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로 규정했고, 미래 지향을 말했다'고 전했다. 모두 일본이 바라는 바대로 말한 셈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도 흡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  입력 : 2023년 03월 01일 2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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