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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의 그 남자 강우규 의사, 불꽃처럼 살다간 65세 사나이

日 신임 총독에 폭탄 던진 '백발 청년, 강우규'
후학 양성에 전 재산 희사.."선배시민으로 새 패러다임 제시"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22년 09월 04일 23시 24분
↑↑ 총독에 폭탄 투척한 강우규 의사 (사진 = 전쟁기념관 제공 = 연합뉴스)
ⓒ 옴부즈맨뉴스

[서울, 옴부즈맨뉴스] 김안식 취재본부장 = 본 기사는 연합뉴스에 게재된 글을 너무나 감명깊은 기사이기에 본지에 옮겨 싣는다.

1919년 9월 2일 오후 5시 서울역 한복판에 '쾅,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조선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린 뒤 마차에 올라탄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던진 폭탄이 터지면서 총독을 보기 위해 인파로 넘쳐났던 현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목표물이었던 총독은 맞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총독부 관리 등 3명이 죽고 34명이 다쳤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사이로 폭탄을 던진 65세의 노인동맹단 소속 강우규(1855∼1920)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어느 사람도 백발노인이 폭탄을 던졌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당시 안중근 의사가 31세, 일왕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던졌을 당시 윤봉길 의사가 25세, 왕 히로히토를 저격했을 당시의 이봉창 의사가 33세였으니 말이다.

또 당시 평균 수명이 40세쯤이고 노인동맹단에 가입하는 노인의 기준이 45세였던 점을 고려하면 당시 강우규는 현재 기준으로 85세 안팎의 고령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서대문 형무소의 강우규 신상 카드(사진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연합뉴스)
ⓒ 옴부즈맨뉴스

그럼에도 그는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신임 총독의 얼굴을 익히고 수차례에 걸쳐 행사장인 서울역을 답사한 끝에 삼엄한 경비를 뚫고 명주 수건에 숨겼던 폭탄을 던진 것이다.

총독을 겨냥한 그의 폭탄 투척은 우리 민족의 강력한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65세 청년의 쾌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 이후 첫 의열투쟁으로 영화 '암살'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강우규의 의거는 '조국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거사 뒤 보름 만에 친일파 순사의 밀고로 하숙집에서 체포된 강 의사는 이듬해 2월 사형선고를 받고, 그해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비록 목표한 바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의거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제는 을사늑약이 조선의 자발적 협조로 체결됐다고 선전했으나 이 의거로 일제의 야욕과 독립을 향한 조선의 의지가 세계에 다시 한번 알려졌다.

당시 'LA TIMES'에도 실릴 만큼 강우규의 폭탄 의거는 미국에서도 주목한 사건이었다.

1855년 평남 덕천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조실부모하고 누나의 집에서 자랐다.

생계를 위해 한의학을 배운 뒤 함남 홍원군에서 아들과 한의원과 잡화상을 운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그는 번 돈의 전부를 가족보다는 후학 양성에 쓸 정도로 청년 세대에 주목했다.

특히 1910년 경술국치를 계기로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중국에 사립 광동학교(光東學校)를 설립해 청년 교육에 헌신하고 청년 독립투사를 지원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아들에게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소원하는 바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강 의사는 '조국 독립과 청년 교육'이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한 진정한 어른이자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된 참 어른"이라면서 "선배로서 다음 세대의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 서울역 광장의 강우규 의사 동상(사진 = OM뉴스)
ⓒ 옴부즈맨뉴스

정부는 강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폭탄을 던진 자리인 서울역 지하철 2번 출구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를 아는 청년들은 많지 않다.

김모(24·대학생)씨는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른다"면서 "학교에서 유관순이나 김구, 안중근 같은 위대한 인물은 배웠지만, 강우규는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장사하는 박모(47)씨는 "(강 의사의 의거가) 우리 민족의 독립을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자긍심이 됐고, 세계만방에 우리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는데 요즘 사람들의 무관심에 씁쓸하다"고 아쉬워했다.

고상진 마중물 선배시민지원센터장은 "역사의 영웅이 아니더라도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이름 없이' 살다간 훌륭한 선배들이 수도 없이 많다"면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들의 이름을 찾아내고 불러줘야 한다. 그래야만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강 의사는 돌봄의 대상인 늙은이도, 자신만을 돌보는 성공한 노인도, 공동체에 훈수 두는 어르신도 아닌 국가와 공동체를 돌보는 주체이자 후배 시민과 연대하며 변화를 꾀한 진정한 선배 시민"이라고 평가했다.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22년 09월 04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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