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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에 서서 이름을 외치다, 평택 할머니 일곱 분의 `옹녀전’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26년 09월 06일 13시 26분
↑↑ ‘옹녀전’ 주인공 7명의 어머니들과 출연 배우 정지호(사진 = 김덕주 기자)
ⓒ 옴부즈맨뉴스

[평택, 옴부즈맨뉴스] 김덕주 취재본부장 = 무대 뒤로 빨랫줄이 걸렸다. 색 바랜 광목과 꽃무늬 천이 나란히 널려 있었다. 그 옆엔 소나무와 노을을 그려 넣은 병풍 한 폭. 지난 8월 28일, 송탄 성광요양원. 조명이 낮게 깔리고, 일곱 분의 할머니가 그 빨래터 앞에 섰다.

시작은 한 여자의 고백이었다. 남편을 셋이나 먼저 떠나보냈다는 이유로 평생 손가락질을 받아온 여자, 옹녀. 그가 입을 열자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들도 하나둘 말문을 텄다. 서러웠던 어린 시절, 두들겨 맞으며 견딘 세월, 무책임한 사람들 밑에서 버텨낸 가난. 각자 살아낸 시간이 빨래터라는 좁은 무대 위로 쏟아져 나왔다.

객석에 앉아 그 장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대사 한 줄 한 줄이 대본이 아니라 진짜 삶의 애환처럼 들렸다. 판소리 한 대목이 가슴 한복판을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옆자리, 앞자리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손뼉을 치고, 대사를 따라 웅얼거리고, 몸을 들썩였다. 관객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 같았다.

이 무대에 선 이들은 배우가 아니다. 평택에 사는 60대부터 80대까지의 어르신 일곱 분이다. 그중 가장 연장자인 심옥순 선생님은 올해 여든셋이다. 지난해 평택사람학교 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어르신들을 만난 게 시작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이런 재미있는 걸 또 할 수 없느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었고, 그 물음이 공연으로 자라났다.

↑↑ ‘옹녀전’ 공연 중 출연 배우들의 열연 모습(사진 = 김덕주 기자)
ⓒ 옴부즈맨뉴스

올해 5월, 오디션이 열렸다. 노래 한 곡을 부르고, 가장 좋았던 기억과 가장 나빴던 기억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뽑힌 일곱 분은 3개월 동안 매주 두 번씩, 동네 아파트 경로당에 모였다. 연기를 배우고, 몸짓을 맞추고, 노래를 익혔다. 대사를 외우는 일이 가장 큰 고비였다. 그래도 서로 기대며 매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걱정만 끼치던 부모가 연극 무대에 선다는 소식에, 자식들이 오히려 가장 놀라고 기뻐했다.

그렇게 완성된 50분짜리 민요극이 지난 8월 24일 팽성노인복지관, 28일 송탄 성광요양원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서는 이들만이 아니라, 객석에 앉은 또래 어르신들도 함께 문화예술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이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극의 끝은 이름이었다. 옹녀가 관객을 향해 가슴을 치며 외쳤다. "나 옹녀 송순호! 잘 살았다!" 이어 신윤자, 심옥순, 최연옥, 이연자, 이애순, 이영민. 한 사람씩, 자기 이름 석 자를 소리 내어 외쳤다.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이름이었다.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객석에서도 박수와 함성으로 그 삶을 진심으로 기렸다.

막이 내리고, 일곱 분은 꽃다발을 한 아름씩 안고 나왔다. 무대에 오르기 전보다 표정이 훨씬 젊어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계속 든 생각이 있다. 이 이야기를 정작 마음에 새겨야 할 사람은 객석에 앉았던 또래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젊은 세대일지 모른다. 자기 이름 석 자를 당당히 외치기까지, 저 손들이 얼마나 오래 두드리고 버텨왔는지. 그 두드림 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서 있고, 그 손끝에서 우리가 자랐다. 평택의 옹녀들이 빨래터에서 외친 그 한마디, "잘 살았다"는 말은 어쩌면 다음 세대인 우리가 돌려드려야 할 인사였는지도 모른다.

↑↑ 평택할매 공연단의 찾아가는 민요 뮤지컬 '평택 빨래터 <옹녀전>' (사진 = 김덕주 기자)
ⓒ 옴부즈맨뉴스

● 주최·기획 복작복작아트컴퍼니, 작·연출 이다희, 총감독 홍승숙, 작곡 이누리, 기획 정지연·이유진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26년 09월 06일 13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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