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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김우일 칼럼] 김원봉 VS 백선엽이 던져주는 시사점은...


옴부즈맨 기자 / ombudsmannews@gmail.com입력 : 2019년 07월 10일
↑↑ 본지 논설위원 및 대우M&A 대표 김우일 박사
ⓒ 옴부즈맨뉴스

일본강점기 일본을 공포로 몰아넣은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에 대한 논란이 정치권을 둘러싸고 거세지고 있다.

진보 측에서는 일제시대 암흑기에 민족의 분노를 거리낌 없이 표현 한 약산이야말로 진정한 독립투사임을 인정하고 비록 북한정권에 기여했지만 가로 늦게나마 그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인정해야 된다는 입장인 반면, 보수 측에서는 북한건국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6·25 전쟁에도 깊숙이 관여했기에 현재의 분단 사태에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김원봉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16년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의 진링 대학,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 의열단을 조직하여 무정부주의적 항일투쟁활동을 시작했다. 6여년에 걸쳐 의열단 단장으로 일본군부 암살, 경찰서, 동양척식회사 등에 대한 폭탄투척 사건을 주도함으로써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을 정도로 무력항쟁을 지속하였다.

당시 독립운동의 태두였던 김구보다 일제가 걸었던 현상금이 높았다 할 정도로 우리나라 독립투쟁에 있어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였다 해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후 연합투쟁의 필요성을 느끼고 김구와 함께 공동정강 하에 분열된 여러 독립투쟁조직을 규합하여 단일조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의 독립투쟁운동이 분명함에도 해방 이후 75년이 지난 후 지금까지도 극명하게 진보, 보수 양측에서 분란이 있는 이유는 해방 후 자진 월북하여 김일성 북한정권에 기여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그는 남한에서의 친일파 세력에 의해 환멸을 느껴 월북했고 추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지만 그의 공과 과는 극명하고 분명하게 설명될 수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약산 김원봉에 대한 잘잘못의 평가를 유보하고 우리 민족 이 암흑기로 살아온 동시대에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을 대비, 비교해봄으로써 그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지 여부를 나름대로 성찰해봤으면 한다.

본래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본인에만 국한한 삶의 여정만을 가지고는 진정한 평가를 하기 어렵다. 동시대의 다른 삶을 유추 비교해봄으로써 주변의 환경에 대해 그가 가진 내면의 깊숙한 동기와 가치를 왜곡과 편견 없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다른 삶의 길을 살았던 사람으로 대비해볼 인물은 바로 백선엽 장군이다. 바로 6·25전쟁 영웅으로 5성장군의 명예원수로 추대되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그는 한미동맹의 상징적인 인물로 칭송되기도 했다.

그는 평안도에서 태어나 평양사범학교에 졸업하고 일본 육사의 분교인 만주봉천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동기는 일본 최상층인 일본군인 장교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육사에 들어가는 사람은 일왕과 일본군에 충성을 맹세하고 스스로 중국대한임시정부의 적이 돼 항일독립군과 전투를 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간 것이다.

백선엽은 독립투사를 토벌하는 조선인 출신으로 만든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다. 당시 간도특설대는 독립군에 대한 가장 악랄한, 잔혹한 활동으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간도특설대원은 사병까지 전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해방 후 그는 평양에 돌아와 민족주의 지도자 조만식의 비서로 활동하다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김일성이 북한에서 부상하자, 본인의 전력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남한으로 도피했다.

군사영어학교에 입학, 이승만의 총애를 받으며 6·25 전쟁에 초고속승진을 거듭 별 넷 장군으로 승승장구했다. 4·19혁명 후 군부쇄신 운동에 밀려 예편했다. 이후 만주국 장교 출신인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자 각국 대사를 거쳐 교통부장관, 국영기업체 사장을 거치고 각종 무공훈장을 받고 전쟁의 영웅, 국군의 아버지로 대접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 김원봉과 백선엽, 같은 민족에 같은 무인의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 다른 삶의 여정을 택했던 두 사람. 해방 전에는 한쪽은 독립투사, 한쪽은 일본군인으로, 해방 후 한 쪽은 평생을 싸워온 친일파와 김일성에 의해 처형됐고, 다른 한쪽은 친일파 때문에 승승장구 전쟁영웅으로 부상되었던 아이러니한 상반된 이 삶의 가치를 가슴속에 음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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